top of page
베트남전쟁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한국정부가 베트남전쟁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참전한 사건
자유우방의 지원으로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1964년 당시 미 지상군에게 안보의 한 축을 의탁하고 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사태를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박정희 정부는 존슨 대통령의 파병요청 이전부터 베트남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때마침 미국의 요청과 함께 남베트남 정부에서도 파병을 요청해오자,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시 참전한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과 “베트남 전선은 한국전선과 직결되어 있다.”는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파병을 결정하였다.
베트남 파병으로 참전한 전투



한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은 조약상의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으며, ‘자유우방에 대한 신의’라는 명분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당시의 시각에서 볼 때 베트남전쟁은 한반도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파병은 당시의 한국정부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한 국가의 생존 및 발전 전략으로써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결론적으로 한국군의 남베트남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원조와 함께 장병들에게 일정액의 전투수당이 지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이 같은 군사원조나 전투수당을 목적으로 파병을 협의하였거나 파병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파병은 처음부터 파병목적이 명확하였고,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권 하에서 작전에 임하였기 때문에 ‘용병’이라는 말은 일부 인사들의 잘못된 표현이다.
bottom of page